한강을 가진 자, 삼국을 이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이 세나라는 한반도에 삼국시대를 이끈 나라이다. 오늘은 각 나라의 전성기때의 대표적인 업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 나라의 전성기는 여러 가지 기준으로 측정될 수 있다. 영토 확장, 역사서 편찬 등, 이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하지만 삼국시대의 전성기를 뜻하는 기준은 재미있다. 바로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나라가 그 시기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한강을 통해 중국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가능하였고, 지리적 특성상 가운데에 위치하였기에 강한 국력이 아니면 차지할 수가 없었다. 실제 삼국시대의 왕들은 이 유역에 중요한 장수나 관리를 배치시킨 사례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럼 처음 한강의 주인이자 삼국시대 중 제일 먼저 전성기를 이끈 나라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백제는 애당초 수도를 한강 유역으로 정했다. 그렇기에 초창기부터 중국과의 교류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국력을 빠르게 키워갔다. 하지만 진짜 백제의 전성기는 4세기 근초고왕 때이다. 그는 마한을 정복하였으며 중국 산동과 일본 규슈까지 영향력을 키워갔다. 또한 고구려와의 전행이 이시기에 발생하였는데, 북진하여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까지 진격하여 고구려의 왕 고국원왕까지 전사하게끔 하였다. 이때 어린 광개토대왕은 복수의 칼날을 준비하였다. 그 유명한 칠지도는 이 시대에 나왔다. 중국과 일본간의 문화가 교류가 활발한 증거이며 백제의 찬란한 문화적 발전을 보여준다.
이어서 5세기의 고구려 전성기이다. 근초고왕이 죽고 백제의 국력은 하락하는 반면, 고구려의 세력은 급증하였다. 고국원왕이 죽고 소수림왕은 직접적인 복수보다, 국력을 키워 향후 복수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뒤이어 즉위한 광개토대왕은 이 준비를 발판으로 정복 활동을 시작했다. 주변 국인 거란, 비려국으로 원정하였고 직접 아리수(한강)으로 건너가 백제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요동지역을 확보하였으며 숙신족 복속하며 북쪽 지역을 정리하였으나 백제가 또 말성이었다. 그 당시, 신라는 매우 약소국이었다. 백제가 왜와 가야와 연합하여 처들어오자 고구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광개토대왕은 해로를 통해 연합군을 무찔렀으며 이 때문에 가야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되었다. 또한 후연과의 전쟁으로 후연을 멸망시키게 하였으며 동부여까지 정벌하였다.
여기에 이어 고구려는 장수왕이 등극하는데, 장수왕은 평양 천도를 통해 남진 정책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표시하였다. 광개토대왕비를 건립하여 선왕을 기렸고, 본격적인 남진을 시작하였다. 그는 짧은 시간에 웅진성, 현재 대전 인근까지 진출했다. 또한 그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랫동안 장수하였다. 의학이 매우 발달한 시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97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6세기는 신라의 시대였다. 그동안 고구려와 백제에 치이며 살았던 신라는 안으로는 세속오계를 통해 결속력을 다졌고,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동맹, 한강유역 진출과 같이 활발히 활동하였다. 이때 건립한 진흥왕순수비와 같은 비석을 보면 당시 활발했던 신라의 활동을 알 수 있다. 결국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중국과 직접 교류를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나당 동맹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며 삼국시대는 끝이 난다.
한반도의 삼국시대는 한강을 기점으로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나제동맹, 고구려 & 신라 동맹 등, 상호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동맹 구조가 급변하였으며, 역사적 자료도 많이 남은 편이라 쉽게 학습할 수 있고, 드라마나 영화로도 많이 재현될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한강 유역을 차지한 나라는 삼국시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마지막에 한강을 차지한 신라는 이를 발판으로 삼국시대를 통일할 수 있었다.
한강을 가진 자, 삼국을 이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