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으면 전쟁이다.

0
168

사람들은 살면서 무수히 많은 선을 넘나든다. 38선일 수도 있으며, 어딘가의 경계선일 수 있다. 오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선은 인간 관계에 관한 선이다. 당신들이 생각했을 때, 친한 친구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 하나, 둘 정도는 친한 친구로 금방 떠오를 수 있다. 문제는 그 경계선에 애매하게 근처에 있는 분류이다. 과연 이들은 친한 친구인가 아니면 친구인가? 애매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그 모두를 친한 친구라고 가정하자. 당신은 친한 친구에게 막대하는가? 아니면 더욱 신경을 써서 대하는가? “친한 친구니까” 라는 안일한 태도로 오히려 더욱 무관심하게 또는 무신경적으로 대하지는 않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하다는 이유로 더욱 소흘히 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필자의 경험을 빗대어 설명하자면, 20년 지기 제일 친한 친구가 있다. 근데 최근에 이 친구를 만나는 과정에서 스스로 너무 못나보였던 경험이 있다.

당연히 원론적으로는 친한 친구에게 더욱 신경을 쓰고 더욱 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하지만 필자 또한 인간인지라 약간 무책임해진 경향이 없잖아 있다. 게임을 하던 도중 이 친구는 못하는 다른 게임을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버린 것이다. 친구는 기분이 나빠 나갔고, 필자는 순간적으로 잘못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물론 후에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 원만한 친구 관계를 이어나갔지만, 이런 계기를 토대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여기서 문제는 바로 경솔함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위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원론적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순간적인 판단은 인간이 어찌할 수가 없다. 왜냐면 인간은 실수를 하는 생물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답은 똑같이 원론적으로 “노력해야한다, 평소에 그래야 한다” 이런식일까? 아니다. 사람이 다름을 인정하고,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

독자들은 쉬고 싶을 때, 누가 쉬는 도중에 자신을 침범한다면 어떤 기분인가? 매우 불쾌할 것이다. 왜 그럴까? 자신의 쉬는 선을 누군가 침범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소하지만 선을 넘으면 이 사단이 나는 것이다. 솔직히 위 두 문장을 보는 것만으로 짜증이 팍 나지 않는가? 이처럼 별거 아니지만, 선을 지키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다시 서론으로 돌아와서 살면서 인간은 정말 무수히 많은 선을 넘나들며, 지킨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38도선을 지키는 직책이다. 오죽 선이 중요하면 경비병이 있단 말인가. 사소한 선부터 경계선까지, 다양한 선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선을 넘어야 될 경우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안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상이다.